기술 블로그를
AI로 운영한 3개월
그리고 솔직한 숫자
시간을 줄이면 퀄리티가 떨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니었습니다.
마케터도 작가도 아닌데

AI 관련 영상이나 글을 보면 다들 쉽게 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프롬프트 하나 넣으면 기획서가 나오고, 버튼 하나로 콘텐츠가 완성됩니다. 그런데 막상 내 업무에 대입해보면 뭔가 어긋납니다. 결과물이 어색하거나,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거나. 저도 그랬습니다. 마케터도 아니고 작가도 아닌데, 블로그를 제대로 운영할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개발자로 십수 년을 살았습니다. 글을 잘 쓴다는 말을 들어본 적도 없고, 콘텐츠 기획이라는 개념은 더더욱 낯설었습니다. 기술 블로그는 쓰는 사람이 좋아서 쓰는 거지, 운영이라는 단어를 붙이기엔 어딘가 거창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냥 알고 있는 걸 정리해서 올리는 공간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꾸준히 쓰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면서요.
그런데 12월부터 방식을 바꿨고, 3개월이 지났습니다.
비수기에 나온 숫자
1월 374PV, 2월 694PV. 한 달 사이 86% 성장입니다.

숫자를 꺼내기 전에 맥락을 하나 짚겠습니다. 기술 블로그는 구조적으로 PV가 낮은 장르입니다. 타겟이 좁고, 검색 유입도 느리고, 바이럴이 거의 없습니다. 일반적인 라이프스타일 블로그나 재테크 블로그와 단순 비교하기 어려운 장르입니다. 게다가 이 기간은 블로그 비수기였습니다. 연초는 대부분의 기술 블로그가 조용해지는 시기거든요. 검색량도 줄고, 새로운 유입도 뜸해집니다. 그 타이밍에 이 숫자가 나올 줄은 저도 솔직히 몰랐습니다.

참여율 40%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술 글은 훑고 나가는 독자가 많습니다. 제목 보고 들어왔다가 첫 문단에서 이탈하는 경우도 흔합니다. 40%면 끝까지 읽는 사람이 상당하다는 뜻입니다. 시간을 줄였는데 오히려 더 읽히는 글이 됐다는 게 스스로도 흥미로웠습니다. 퀄리티를 지키면서 속도를 올리는 게 가능하다는 걸, 숫자로 확인한 순간이었습니다.
방향을 잡는 쪽은 언제나
글을 쓰기 전에 AI와 먼저 이야기합니다. 주제 선정부터 같이 합니다. 이 글이 지금 나올 타이밍인지, 비슷한 글과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를 먼저 검토합니다. 단순히 "이런 글 써줘"가 아니라, 시장에서 이 글이 어떤 위치를 가질 수 있는지를 같이 따져봅니다.
실제 사례가 있습니다. GPU 역사 시리즈를 연재하던 중에 UE5 편을 쓸 시점이 됐을 때, AI와 함께 이 글이 링크드인에서 반응을 얻을 수 있는지 분석했습니다. 기술 직군 독자들이 어떤 맥락에서 이 주제에 관심을 가질지, 어떤 각도로 접근하면 공유가 일어날 수 있는지를 같이 정리했습니다. 그 예측이 정확히 통했습니다. 운이 아니라 기준이 있었습니다.
주제가 잡히면 저는 5분 안에 초안 구조를 씁니다. 완성된 글이 아니어도 됩니다. 흐름만 잡히면 됩니다. 그걸 AI에게 넘기고, 나온 결과물을 다시 다른 AI와 함께 교차검토합니다. 퇴고까지 끝내면 글 한 편에 30분 내외입니다. 이미지 생성, 태그, slug 추천까지 포함해서입니다. 예전에 글 한 편 쓰는 데 몇 시간씩 붙잡혀 있던 것과는 완전히 달라진 흐름입니다.
중요한 건 AI가 글을 쓴 게 아니라는 겁니다. 구조는 제가 잡았고, AI는 그 위에서 움직였습니다. 무엇을 쓸지, 왜 이 순서인지, 어떤 독자를 향한 글인지는 전부 제가 결정했습니다. AI는 그걸 실행하고 다듬는 역할이었습니다. 편집자 겸 마케터와 일하는 느낌이었는데, 방향을 잡는 쪽은 언제나 저였습니다. 그 차이가 결과물의 밀도를 갈랐다고 봅니다.
순서가 가지는 의미
ChatGPT로 초안을 잡는 건 객관적인 거리를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제 생각에 너무 가깝게 붙어 있으면 글이 좁아지는데, ChatGPT가 그 거리를 잡아줬습니다. 지금은 Claude로 같은 역할을 가져왔고요.
Gemini는 다른 이유로 씁니다. 구글 검색 중심으로 학습된 모델이다 보니, 일반 독자가 어떻게 읽을지를 체크하는 데 쓸 만합니다. ChatGPT로 파고들고, Gemini로 대중성을 살짝 곁들이는 식입니다.
부수적으로는 Gemini, ChatGPT, 그리고 저 셋이서 돌아가며 교차검증을 하니까 할루시네이션이 걸러지기도 하고요.
도구를 많이 쓴 게 아니라, 각 도구가 잘 하는 걸 구분해서 배치한 겁니다.
십수 년이 남긴 감각
십수 년을 개발자로 일하면서 비개발 직군과 항상 같이 일했습니다. 기획자, PM, 마케터, 운영팀. 그분들의 언어로 기술을 설명하고, 업무 흐름에 맞춰 개발 결과물을 이어붙이는 게 일상이었습니다. 다양한 도메인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생긴 감각이 있습니다. 개발을 모르는 현직자가 새로운 도구 앞에서 어디서 막히는지, 그리고 그 막히는 지점을 어떻게 돌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감각입니다.
AI 앞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반복됩니다. 영상 보고 따라 해봤는데 내 업무엔 안 맞았던 경험, 결과물은 나왔는데 어딘가 어색해서 쓰질 못하는 경험. 막히는 지점이 도구가 아니라 구조에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내 업무의 흐름을 먼저 잡고, 그 위에 AI를 얹는 순서가 필요한데, 그 순서를 잡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곳이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AI 교육이 도구 사용법에서 멈추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번에 블로그를 직접 운영하면서 다시 확인한 것들이었습니다. 코딩이 하나도 없는 워크플로우로, 기술 블로그 비수기에 86% 성장이 가능했습니다. 이게 블로그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기획서를 쓰고 보고서를 만들고 콘텐츠를 생산하는 현직자라면 아마 감이 오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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