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막한 사람에게 지도를 그려주는 건 전문가가 아닙니다.
막막함 자체를 구조화하는 과정이 지도를 만듭니다.

 

AI를 통한 경험 번역

 

부트캠프를 듣고 있는데도,

막상 지원하려 하면 멈추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기술이 부족해서만은 아닙니다.

이전에 해온 일과 지금 배우는 기술이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몇 년을 일했는데도, 그 시간이 채용 시장에서는 쓸모없는 시간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스스로도 그렇게 느끼기 시작하면, 포트폴리오를 만들기 전부터 이미 위축됩니다.

 

최근 그런 상태의 수강생과 1시간짜리 세션을 진행했습니다.

겉으로 보면 평범한 직무 전환 케이스였습니다. 수강 중, 결과물은 애매하고, 어떤 직무를 목표로 해야 할지도 불분명한 상태. 그런데 이 케이스의 핵심은 기술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이미 가진 경험이 채용 시장에서 읽히는 언어로 번역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2시간 뒤, 이 수강생 앞에는 하나의 로드맵이 놓였습니다. 어떤 포지션이 유리한지, 어떤 회사군을 노려야 하는지, 기존 결과물을 살릴지 새로 만들지, 만든다면 어떤 주제로 어디까지 만들어야 하는지, 그리고 앞으로 몇 달 안에 뭘 해야 하는지가 한 페이지에 정리돼 있었습니다.

 

없던 경력이 생긴 게 아닙니다. 원래 있던 경험이, 이제야 지원 가능한 형태로 보이기 시작한 겁니다.


문제는 공부량이 아니라 구조 부재였다

이 수강생의 상태를 겉으로만 보면 흔히 이렇게 해석하기 쉽습니다.

"실력이 부족한가 보다. 더 공부해야겠네." 하지만 실제로는 그게 아니었습니다.

 

여러 해의 실무 경험이 있었습니다.

예산 처리, 비용 관리, 내부 프로세스 운영 같은 업무를 직접 다뤄본 경력.

겉으로 보면 지원하려는 직무와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아무것도 없는 경력도 아닙니다.

문제는 그 경험이 지원 전략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 경험이 어떤 도메인에서 강점이 되는지,

어떤 회사군에서 유리하게 작동하는지,

어떤 방향으로 번역해야 면접에서 살아나는지.

이 기준이 없으니 이미 가진 경험도 쓸모없는 것처럼 느껴졌던 겁니다.

 

구조가 없는 상태에서 지식을 더 쌓아도 방향은 더 흐려집니다.

이번 세션의 목표는 그래서 단순했습니다.

더 많이 배우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가진 경험을 실행 가능한 방향으로 구조화하는 것.


AI를 써서 막막함을 실행 계획으로 바꿨다

세션 전 상태는 이랬습니다. 가고 싶은 방향조차 없었지습니다.

이 케이스는 직무 전환 사례였지만, 본질은 특정 직군의 문제가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비슷한 방식으로 자기 경험을 설명하지 못해 멈춥니다.

 

세션 후에는 달랐습니다.

실무 도메인 경험을 살려 어떤 회사군을 노릴지 정해졌고,

기존 결과물을 재정리할지 새로 만들지 A/B로 판단했으며,

만들 경우 어떤 주제로 어디까지 만들어야 하는지까지 내려왔습니다.

AI를 통해 막연한 "이쪽으로 가고 싶다"가 생겼고,
그 이후에는 지원 전략과 실행 계획까지 붙은 셈입니다.

 

이걸 만드는 데 쓴 방식은 단순했습니다.

먼저 경력 데이터를 AI에게 넣어 강점 영역과 지원 가능한 도메인을 분석했습니다.

수강생 본인도 처음 보는 자기 분석 결과였습니다.

오래 다뤄온 실무 경험이, 특정 회사군에서 오히려 유리한 포지션이 될 수 있다는 방향이 나왔습니다.

 

다음으로 그 결과를 지원 전략 문서로 정리했습니다.

가능한 포지션, 결과물 방향, 목표 시점까지의 타임라인.

대화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음에 꺼낼 수 있는 형태로 저장했습니다.

 

그리고 그 문서를 다른 AI에게 넘겨 현실성을 검증했습니다.

같은 내용을 서로 다른 AI에게 보여주면 보는 각도가 달라집니다.

 

이번에도 충돌이 일어났습니다.

"범위가 주어진 기간 대비 넓다"는 피드백이 나왔습니다.

처음 만들어진 계획이 다소 이상적이었던 겁니다.

 

이 피드백을 다시 반영해 범위를 줄이고 실행 계획으로 바꿨습니다.

최종적으로 A안과 B안, 두 가지 선택지가 나왔고, 수강생이 직접 하나를 골랐습니다.


AI가 해준 건 '결정'이 아니라 '번역'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걸 짚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AI를 여러 번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핵심은 "AI를 몇 개 썼는가"가 아닙니다.

 

AI가 해준 것은 흩어진 경력을 정리하고,

가능한 방향을 좁히고,

실행 계획을 제안하고,

범위를 줄이고,

일정까지 구체화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사람이 이미 갖고 있던 경험을, 채용 시장에서 읽히는 언어로 다시 정렬해준 것입니다.

 

경력은 있었지만 경력처럼 보이지 않았고,

강점은 있었지만 강점처럼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AI는 바로 그 중간 번역기를 해줬습니다.

커리어 컨설팅 시장에는 이런 작업을 수백만 원짜리 서비스로 파는 곳들이 있습니다.

 

그 비용의 상당 부분은 "경험을 언어로 번역하는 과정"에 들어갑니다.

그 과정을, 지금은 AI로 훨씬 빠르게 할 수 있습니다.

물론 AI가 모든 걸 대신해주진 않습니다.

다만 사람 혼자서는 흐릿하게 느끼던 것을 선명한 선택지로 바꿔주는 속도는 압도적으로 빠릅니다.

그리고 마지막 판단은 언제나 사람이 합니다.

 

AI를 잘 쓰는 사람은 AI에게 결정을 떠넘기는 사람이 아닙니다.
AI를 이용해 판단 가능한 상태를 만드는 사람입니다.

진짜 지표는 '열정'이 아니라 다음 행동이다

세션 마지막에 수강생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열정이 생겨요."

 

좋은 반응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말을 성공 지표로 보지 않습니다.

첫 세션에서는 누구나 조금 들뜰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그 다음입니다.

다음 주에 실제로 손을 움직였는지,

A안과 B안 중 무엇을 선택했는지,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는지.

진짜 변화는 감정이 아니라 행동에서 확인됩니다.

 

그래도 분명한 건 있습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상태와,

"다음 주까지 뭘 해야 할지 알겠다"는 상태는 완전히 다릅니다.

 

취업 준비에서 가장 무서운 건 느리게 가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 방향도 없는 채로 같은 자리를 계속 맴도는 것입니다.

방향이 생기면 속도는 나중 문제입니다.

방향이 없으면 속도는 아예 의미가 없습니다.


없는 경력을 만드는 게 아니라, 있는 경험을 다시 보이게 하는 것

많은 사람들이 정말로 경력이 없어서 막히는 게 아닙니다.

 

이미 가진 경험이 있는데,

그것이 시장 언어로 정리되지 않아서 막힙니다.

 

실무 경험은 도메인 이해가 되고,

반복한 업무는 요구사항 감각이 되고,

현업과의 소통 경험은 협업 역량이 됩니다.

 

경력의 가치가 갑자기 새로 생긴 게 아닙니다.

원래 있던 가치가 제대로 읽히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번 사례는 특정 직무 전환 케이스였지만,

이런 구조는 개발자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직무 전환을 준비하는 사람,

실무 경험은 있는데 포지셔닝이 안 되는 사람,

이력서에는 적혀 있는데 강점으로 읽히지 않는 사람 모두에게 똑같이 필요합니다.

 

저는 이 과정이 결국 번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이미 있는 것을 지원 가능한 형태로 다시 쓰는 일.

 

그 번역이 되면,

사람의 표정이 달라집니다.

"나는 아무것도 없다"에서

"아, 내가 가진 걸 이렇게 쓸 수 있구나"로 넘어가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더 많은 정보가 아니라,

이미 가진 경험을 다시 읽히게 만드는 구조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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